장훈 별세, 3085안타 전설이 남긴 것과 KBO 인연
"통산 3천85안타의 전설이자 한국 야구의 든든한 선배였던 장훈 선배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승엽 요미우리 타격코치가 어제 인스타그램에 올린 문장이에요.
일본 프로야구 역대 유일한 3000안타 타자, 재일교포 2세 장훈(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오후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두 달 전 도쿄돔에서 대타로 타석에 섰던 사람이라, 이 소식이 더 갑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일단 이것만 알고 가세요
지금 이 사안, 딱 다섯 줄이면 정리됩니다.
2026년 9월 9일 오후 5시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86세로 별세했어요.
일본 TBS가 먼저 보도했고, 다음 날인 10일 일본 명구회가 공식 발표하면서 확정됐습니다.
NPB 통산 3085안타는 지금까지도 일본 프로야구 유일한 3000안타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는 1982년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았던, 한국 프로야구 태동기의 조력자이기도 했어요.
커리어 한 장 요약
- 본명·일본명 : 장훈 /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勳)
- 출생 :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 재일동포 2세(부모는 경남 창녕 출신)
- 현역 : 1959~1981년, 23시즌 · 좌투좌타 외야수
- 소속 : 도에이 플라이어스 → 닛타쿠홈 → 니혼햄 → 요미우리 자이언츠(1976년~) → 롯데 오리온스
- 통산 : 2752경기 타율 0.319(역대 3위), 3085안타(NPB 1위), 504홈런(공동 7위), 1676타점, 319도루
- 수상 : 타격왕 7회, 출루왕 9회, MVP 1회(1962년), 신인왕(1959년), 베스트나인 16회, 올스타 18회
- 서훈 :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

3085안타가 얼마나 미친 숫자냐면요
야구에서 통산 3000안타는 사실상 "은퇴할 때까지 매년 130안타씩 23년"이라는 뜻이에요.
부상도 슬럼프도 없이, 라는 조건까지 붙고요.
장훈은 그걸 실제로 해냈습니다.
20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 9시즌 연속 3할. 이 두 줄이 3085라는 숫자의 정체예요.
대기록이 나온 날은 1980년 5월 28일 한큐전이었어요.
당시 롯데 소속, 나이는 마흔.
그런데 이 양반, 3000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처리했습니다.
연출 담당자가 따로 있었나 싶은 마무리죠.

단일 시즌 기록도 물건이에요.
1970년 타율 0.3834는 당시 NPB 최고 기록이었고, 1986년 랜디 바스가 0.389로 깰 때까지 26년을 버텼습니다.
희생번트는 통산 4개.
23년 동안 4개예요. 번트 사인이 안 나온 게 아니라 낼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안 알려진 항목 하나.
NPB 역사에서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를 한 몸에 다 채운 선수는 장훈이 유일합니다.
안타 잘 치는 타자, 홈런 치는 타자, 발 빠른 타자를 각각 떠올려보세요.
보통 셋은 다른 사람이거든요.

그럼 이치로보다 대단한 건가요
이건 사람들이 진짜 많이 묻는 지점이라 짚고 갑니다.
이치로의 미·일 통산 4367안타가 숫자로는 더 큽니다.
다만 NPB 단일 리그 기준으로 좁히면 3000안타를 넘긴 사람은 장훈 하나예요.
비교라기보단 무대가 다른 이야기라, "누가 위냐"보다 "왜 아무도 못 따라왔냐"가 더 정확한 질문 같아요.
오른손이 굽은 아이가 왼손 타자가 되기까지
기록만 보면 재능의 화신 같지만, 출발점은 정반대였어요.
네다섯 살 무렵 화로 사고로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붙고 굽는 장애가 남았거든요.
원래 오른손잡이였던 아이가 왼손 타자로 방향을 틀어 정상까지 갔습니다.
일본 야구 기자 사토시 아사치는 부고 소식에 이렇게 적었어요.
NPB의 '안타 제조기' 장훈이 별세했다. 거성이 졌다.
장훈은 어린 시절의 피폭 경험, 선수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른손 화상, 그리고 한국 국적이라는 소수자로서의 배경 등 수많은 어려움을 안고도 NPB에서 통산 3085안타 대기록을 작성한 대타자였다.
피폭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섯 살이던 1945년 8월 6일, 그는 히로시마에서 어머니·작은누나와 함께 피폭됐습니다.
근로동원 중이던 큰누나는 화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고요.
말년의 그는 TBS '선데이 모닝'에서 이 기억을 반복해서 꺼냈어요.
"8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전쟁만큼은 지금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야구 코너 패널이 방송에서 할 말치고는 무거운데, 그는 굳이 했습니다.

요미우리 4번타자 39번, 그리고 70번
1976년 요미우리로 옮긴 뒤엔 동갑내기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이른바 'OH 타선'을 만들었어요.
오(Oh)와 하리모토(Harimoto)의 앞글자입니다.
이 콤비가 1976~1977년 센트럴리그 2연패를 끌었죠.
둘 다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처지 — 한쪽은 한국계, 한쪽은 대만계 — 라 우정의 결이 좀 달랐다고 전해집니다.
2024년 '오 사다하루 데이'에는 지팡이를 짚고 시구를 하러 나왔어요.
그리고 이 대목이 한국 팬한테 제일 짜릿한 부분인데요.
장훈은 요미우리 역대 39번째 4번타자였습니다.
이승엽은 2006년 이적 후 70번째 4번타자가 됐고요.
같은 팀, 같은 자리, 두 명의 한국인.
이거 우연이라기엔 너무 잘 짜인 계보 아닌가요.

그래서 이승엽이 10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추모글이 더 읽히더라고요.
일본에서 뛰던 시절, 강한 마음을 가지라던 선배님의 격려와 후배를 아껴주신 따뜻함을 오래 기억하겠다.
통산 3천85안타의 전설이자 한국 야구의 든든한 선배였던 장훈 선배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국 프로야구가 그에게 진 빚
여기가 국내 기사들이 의외로 대충 넘어가는 구간이에요.
장훈은 1982년 KBO 출범 당시부터 2005년까지 총재 특별보좌를 맡았습니다.
23년이에요. 명예직 이름표만 달고 있던 기간이 아니라, 리그 태동기에 조언이 오간 자리였습니다.
더 결정적인 건 그 이전이에요.
장훈이 도에이에 입단할 때 한국 국적을 고수하자, NPB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수는 국적이 외국이어도 외국인 선수 규정에서 제외"하는 예외 조항을 새로 만들었거든요.
이 조항 덕에 이후 재일교포 선수들이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일본 무대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백인천도 그 길을 지나온 사람이고요.
그 국적 고수의 뿌리엔 어머니 박순분 씨의 말이 있었다고 장훈은 회고했어요.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할 필요 없다."
아들 데뷔 앞두고 나온 말치곤 서슬이 퍼렇죠.

그리고 1982년 KBO 출범 때, 백인천을 MBC 청룡 선수 겸 감독으로 적극 추천한 사람도 장훈이었다는 비화가 전해집니다.
공교롭게도 그 백인천 전 감독이 2026년 8월 15일 향년 83세로 먼저 떠났어요.
당시 장훈은 일본 매체를 통해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가 세상을 떠나 매우 안타깝다"며 "백인천은 한국 프로야구의 진정한 개척자"라고 했고요.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돼 본인의 부고가 나왔습니다.
재일교포 야구 레전드 두 명이 한 계절 안에.

보도가 시간순으로 어떻게 채워졌나
이번 건은 '한 번에 다 나온 뉴스'가 아니라 이틀에 걸쳐 조각이 붙은 뉴스예요.
어느 시점에 무엇이 새로 확인됐는지를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 시점 | 출처 | 그때 새로 확인된 것 |
|---|---|---|
| 2024년 12월(보도 기준) |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 | 장훈이 "몇 년 전 국적을 바꿔 지금은 일본 국적"이라고 처음 공개. 귀화 자체는 수년 전, 공개는 이때 — 두 시점이 다르다는 게 이 보도로 정리됨 |
| 2026년 7월 27일 | 도쿄돔 '산토리 드림 매치 2026' | 86세에 대타 출전. 결과적으로 마지막 공개 활동이 됐다는 사실은 별세 이후에야 의미가 붙음 |
| 2026년 8월 15일 | 일본 매체 · 국내 인용 보도 | 백인천 전 감독 별세에 장훈이 애도. "한국 프로야구의 진정한 개척자" 발언 확인 |
| 2026년 9월 9일 오후 | 일본 TBS(최초 보도) | 별세 사실 첫 전파. 다만 시각 표기가 매체마다 갈리기 시작 — 다수는 "오후 5시쯤", 일부는 "9일" 또는 "9일 오전" |
| 2026년 9월 10일 | 일본 명구회 공식 발표 | 전·현직 선수 모임 차원의 공식 확인. "9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으로 사망일 확정 |
| 2026년 9월 10일 | 국내 매체 일제 부고(연합뉴스·동아일보·경향신문·뉴시스·뉴스1·아시아경제 등) | 커리어·KBO 총재 특별보좌 이력(1982~2005년)이 한국 독자용으로 붙음. 귀화 시점 서술은 매체별로 "몇 년 전"과 "2024년 12월 공개"로 갈림 |
| 2026년 9월 10일 | 이승엽 인스타그램 · 사단법인 일구회 추도문 | 국내 야구계의 공식 애도 문안이 처음 나옴 |
| 2026년 9월 10일 현재 | KBO | 아직 미정. "장례 절차 확정 후 조문 등 조치를 결정할 계획"까지만 밝힌 상태 |
정리하면 사망 사실 → 공식 확인 → 한국 쪽 맥락 → 애도 반응 → 조문 절차 순으로 하루 반 만에 층이 쌓인 셈이에요.
그리고 아직 맨 마지막 층은 비어 있습니다.
확정된 것과 아직 아닌 것
부고 기사는 속도전이라 표기가 조금씩 엇갈립니다.
지금 시점에서 어디까지가 확정인지 단계별로 갈라뒀어요.
- 2026년 9월 9일 별세, 향년 86세 일본 TBS가 9일 최초 보도, 10일 일본 명구회가 공식 발표로 확인
- 통산 3085안타·504홈런·319도루, 1982~2005년 KBO 총재 특별보좌 NPB 공식 기록 및 국내 매체 부고 기사 전반에서 일치, 총재보좌 기간은 자료 간 엇갈림 없음
- 이승엽 인스타그램 추모글, 일구회 추도문 발표 9월 10일 연합뉴스·뉴스1 인용
- KBO 조문 등 공식 조치 KBO는 9월 10일 "장례 절차 확정 후 결정할 계획"이라고만 밝힌 상태
- 정확한 사망 시각 뉴스1·동아일보·경향신문은 "9일 오후 5시쯤", 스마트비즈·공공뉴스·청년일보는 "9일" 또는 "9일 오전"으로 표기해 차이가 있음
- TBS '선데이 모닝' 패널 활동 시작 연도 아시아경제는 1999년부터, 뉴시스는 2010년부터로 보도 — 종료 시점(2021년)만 일치

국적 이야기, 피하지 않고 짚습니다
이 대목 궁금해하시는 분 많을 거예요.
평생 한국 국적을 지킨 사람으로 알려졌던 그가, 2024년 12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이미 일본 국적이라고 밝혔거든요.
귀화 자체는 그보다 수년 전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공개가 2024년 말이었던 겁니다.
이 둘을 섞어 읽으면 오해가 생겨요.
당시 그는 한국 정부·야구계에 대한 서운함도 함께 털어놨습니다.
"한때 (한국의) 한 정권이 재일 한국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은혜도 의리도 잊고…" 같은 표현이 나왔죠.
동시에 이 말도 했어요.
"당연히 부모의 피를 이어받았고, 재일 교포의 자부심도 갖고 살고 있다."
이번 부고와 함께 2024년의 이 발언이 다시 회자되는 분위기예요.
국적을 지켰던 시절의 서사와 서운함을 말한 시점의 발언이 나란히 놓이면서, 애도와 아쉬움이 섞인 정서가 함께 오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커뮤니티나 검색 트렌드상 명확한 댓글 인용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여론이 어느 쪽으로 갈렸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는 뜻입니다.

남은 문장들
일본 명구회는 공식 발표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안타 제조기로 불린 장훈 위원이 9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장훈 위원이 오랜 세월 남긴 위대한 업적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압도적인 타격 성적과 야구를 대하는 엄격한 자세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
사단법인 일구회의 추도문은 이랬고요.
"일본프로야구의 전설이자 한 시대를 대표한 위대한 야구인 장훈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
"후배 야구인들을 격려하고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과 도움을 주셨다."
TBS 뉴스는 "장훈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애도를 표한다", "장훈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은퇴 후 20여 년을 '미스터 쓴소리'로 살면서 어지간히 미움도 받았을 텐데, 마지막 문장들이 다 따뜻해요.
쓴소리도 결국 애정이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거겠죠.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과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습니다.
두 나라가 각각 훈장을 준 야구인.
그 사실 하나로 이 사람의 위치가 대충 설명되는 것 같아요.
KBO의 조문 계획은 장례 절차가 확정되는 대로 나옵니다.
3085. 아직 아무도 못 넘은 숫자예요.
확정되면 이어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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