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셜
EPL 한국인 0명, 21년 만에 벌어진 이유

EPL 한국인 0명, 21년 만에 벌어진 이유

해외축구 ·

요즘 새벽 중계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이상한 걸 깨달았어요.
다음 시즌 EPL 개막전을 챙겨볼 이유가 하나도 안 떠오르더라고요.
손흥민은 LA에 있고, 황희찬 팀은 강등됐고, 양민혁은 벨기에로 떠났어요.
2005년 박지성 이후 21년 동안 한 번도 비어본 적 없던 자리가 지금 비어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날짜순으로 하나씩 짚어볼게요.

새벽에 중계 켜놓고 앉아 있다가 좀 서운했어요

지난 주말에 프리시즌 경기 하나 틀어놓고 저녁을 먹다가, 문득 이번 시즌 EPL 개막 일정을 검색해봤어요.
8월 22일 아스널-코번트리 시티 개막전이더라고요.
그런데 달력에 표시를 하려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누구 경기를 챙겨봐야 하는지가 안 떠오르더라고요.

손흥민의 맨유 EPL 시절 빨간 저지 착용 모습
손흥민의 맨유 EPL 시절 빨간 저지 착용 모습

2005년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한 이후로 21년 동안, 우리는 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요.
박지성 다음엔 이영표가 있었고, 설기현이 있었고, 이청용·기성용이 있었고, 그다음이 손흥민이었죠.
바통이 끊긴 적이 없었거든요.
그게 2026년 여름에 처음으로 끊겼습니다.

지금 무슨 일인지 한 문단으로

손흥민은 작년 여름 LAFC로 떠났고, 황희찬은 소속팀 울버햄튼이 최하위로 챔피언십에 강등됐고, 마지막 희망이던 양민혁마저 8월 12일 벨기에 베스테를로 임대가 공식 발표됐습니다.
그 결과 2026-27시즌 개막 시점 기준으로 EPL 1군 공식경기 출전이 확정된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게 됐어요.
다만 이건 "한국 선수가 EPL 스쿼드에서 전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분이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이라 아래에서 다시 짚을게요.

날짜별로 보면 무너진 순서가 보여요

기사 하나만 보면 "갑자기 0명"처럼 보이는데, 시간순으로 늘어놓으면 이건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1년에 걸쳐 도미노가 한 장씩 넘어간 겁니다.

시점일어난 일출처
2025년 8월손흥민, 토트넘 떠나 MLS LAFC 이적 (오피셜)다수 매체
2025-26시즌 종료울버햄튼 20위(3승 11무 24패)로 챔피언십 강등 확정 — 황희찬 EPL 잔류 불가스포츠동아 등
2025년 12월 28일김지수, 브라이턴전 교체 출전으로 역대 15번째 한국인 EPL 출전자 등재(20세 4일)스포츠경향
2026년 8월 4일황희찬 햄스트링 관리로 프리시즌 결장, 매각 대상 거론 — 다만 구체적 협상 클럽은 없음스포츠동아
2026년 8월 7일가디언, 뉴캐슬 대표 유망주로 박승수(19) 선정가디언
2026년 8월 9일김지수, 카이저슬라우테른 임대 마치고 복귀 — 렌과 비공개 친선전 풀타임아주경제
2026년 8월 10일디애슬레틱, 양민혁 베스테를로 임대 "합의" 보도 — 이 시점까진 설디애슬레틱
2026년 8월 12일토트넘·베스테를로 양측 공식 발표. 한 시즌 임대, 완전 이적 옵션 없음, 등번호 47번헤럴드경제·스타뉴스

여기서 눈여겨볼 게 8월 10일과 12일의 차이예요.
10~11일 기사들은 "합의", "유력"이라고 썼고, 12일에야 구단 공식 발표가 나왔거든요.
이 이틀을 뭉개고 인용하면 설과 오피셜이 섞여버립니다.
실제로 커뮤니티에선 이미 섞여 돌아다니고 있고요.

손흥민의 한국 국가대표 빨간 저지 경기 모습
손흥민의 한국 국가대표 빨간 저지 경기 모습

손흥민은 왜 하필 지금 미국이었을까

이게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이에요.
33세면 유럽에서 두세 시즌은 더 뛸 수 있는 나이 아니냐는 거죠.
사우디에서 3년 1450억 규모 제안까지 왔었는데 그것도 안 받았거든요.
대신 고른 게 LAFC였습니다.

계약은 기본 2년, 2027년까지고 2028·2029년 옵션이 붙어 총 4년까지 늘어날 수 있어요.
이적료는 비공개지만 미국 언론 추정치가 2600만 달러, 약 360억원.
MLS 역대 최고 이적료라고 하더라고요.
구단 연봉 지출로 보면 3010만 달러(약 430억원)로 인터 마이애미 다음 2위입니다.

"손흥민은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기량이 뛰어난 아이콘입니다. 그의 야망과 능력, 캐릭터는 LAFC가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합니다." — 존 소링턴 LAFC 공동회장 겸 단장

그리고 성적이… 잘합니다.
합류 후 8경기 8골 3도움, 주간 베스트11 3회.
솔직히 저는 "적응기 좀 걸리겠지" 했는데 첫 달부터 저러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토트넘 팬 입장에선 배가 아프고, 한국 팬 입장에선 그냥 기분이 좋고, 그런 이상한 상태입니다.

손흥민의 경기 전 훈련 모습
손흥민의 경기 전 훈련 모습

황희찬은 이적이 아니라 팀이 내려간 거예요

여기 오해가 좀 있어요.
황희찬이 EPL을 떠난 게 아니라, 팀이 EPL에서 떨어진 겁니다.
울버햄튼이 지난 시즌 3승 11무 24패, 승점 20으로 최하위였거든요.
개인이 아무리 뛰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구조였어요.

물론 본인 상황도 좋진 않았습니다.
지난 시즌 31경기 3골 4도움에 부상이 계속 따라붙었고, 트랜스퍼마크트 기준 누적 결장이 182일, 울버햄튼 합류 후 부상만 11번째예요.
몸값도 한때 2400만 유로에서 2026년 6월 기준 600만 유로까지 내려왔고요.
계약은 2028년 6월까지, 1년 연장 옵션이 붙어 있습니다.

이적설은 어떠냐고요.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데, 5월까지 풀럼·PSV 얘기가 돌다가 이후로 조용해졌어요.
8월 4일 스포츠동아 보도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까지고, 구체적 협상 클럽은 "보이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2차 보도로 넘어가면서 이게 "황희찬 이적설 확산"으로 커진 건데, 원 소스는 훨씬 조심스러운 톤이었어요.

황희찬의 Leeds 노란 저지 착용 경기 모습
황희찬의 Leeds 노란 저지 착용 경기 모습

양민혁, 네 번째 임대라는 게 마음에 걸려요

2025년 1월 강원FC에서 토트넘으로 갔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죠.
현지에서도 "환영받을 재능"이라는 평가가 나왔고요.
출국 인터뷰에서 본인이 이런 말을 했었어요.

"(손흥민과) 같이 뛰게 된다면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뛸 것 같습니다." — 양민혁, 토트넘행 출국 인터뷰

그 문장을 지금 다시 보니까 좀 짠하더라고요.
같이 못 뛰었거든요.
손흥민이 먼저 떠났으니까요.

양민혁이 토트넘 저지를 들고 있는 영입 포토콜
양민혁이 토트넘 저지를 들고 있는 영입 포토콜

이적 후 임대 경로가 QPR(2025년 1월) → 포츠머스(2025년 8월) → 코번트리 시티(2026년 1월) → 베스테를로(2026년 8월)입니다.
이번이 네 번째예요.
코번트리 임대 때는 팀이 챔피언십 우승하고 EPL 승격까지 했는데, 정작 본인은 정규리그 3경기·FA컵 1경기에 그쳤어요.
토트넘 1군 EPL 공식경기 출전은 아직 0경기입니다.

왜 못 뛰냐는 질문에 대해 제일 냉정한 답이 최근 나온 주급 자료예요.
뉴데일리가 '기브미스포츠'를 인용해 토트넘 1군 34명 주급을 정리했는데, 양민혁이 주급 1만 파운드(약 1909만원)로 34명 중 33위였습니다.
바로 아래가 19세 유스 마이키 무어고요.
참고로 손흥민이 있던 시절 그의 주급은 19만 파운드(약 3억6263만원), 스쿼드 1위였어요.
19배 차이. 구단이 이 선수를 지금 어느 칸에 놓고 있는지가 숫자 하나로 다 보입니다.

양민혁의 토트넘 저지 공개 포토콜
양민혁의 토트넘 저지 공개 포토콜

그렇다고 벨기에행이 "하위 리그 전전"이냐 하면, 그건 또 다른 얘기예요.
디애슬레틱이 짚기로 올여름 토트넘에서 브라이턴·프레스턴으로 각각 옮긴 루카 부스코비치와 알피 디바인 둘 다 베스테를로에서 성공적인 임대 시즌을 보낸 선수들이거든요.
말하자면 토트넘이 검증해둔 성장 루트인 셈이에요.
베스테를로 구단도 발표문에서 "1대1 돌파와 득점, 도움을 만들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며 "훌륭한 공격 옵션"이라고 했고요.
완전 이적 옵션이 없는 것도, 나중에 다시 데려오겠다는 뜻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 이런 말을 했어요.
"지난 시즌 내 플레이를 돌아보며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다", "4년 뒤 다음 월드컵에 출전하려면 당장 눈앞의 2026-27시즌부터 제대로 보내야 한다."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말입니다.

토트넘 저지 선수와 상대팀 선수의 경합 장면
토트넘 저지 선수와 상대팀 선수의 경합 장면

지금 어디까지가 확정이고 어디부터가 추측인지

이 이슈는 매체마다 숫자가 달라서 헷갈리기 딱 좋아요.
8월 초엔 "EPL 한국 선수 4명"이라던 기사도 있었고, 12일 이후엔 "사실상 0명"이 됐거든요.
같은 선수 구성을 두고 "뛸 가능성이 있느냐"의 기준이 달랐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 기준으로 확정도를 갈라봤어요.

  • 양민혁, 베스테를로 한 시즌 임대 · 등번호 47번 · 완전 이적 옵션 없음 2026년 8월 12일 토트넘·베스테를로 양측 공식 발표 (헤럴드경제·스타뉴스·아주경제)
  • 손흥민 LAFC 이적, 황희찬 소속팀 울버햄튼 챔피언십 강등 손흥민은 2025년 8월 구단 공식 발표, 울버햄튼은 2025-26시즌 20위로 강등 확정
  • 박승수(뉴캐슬)·김지수(브렌트퍼드)는 로스터에 있으나 1군 출전 미확정 박승수는 U-21 위주, 김지수는 콜린스·피녹 등과 경쟁 및 재임대 육성 방침 (가디언·아주경제)
  • 황희찬 이적은 "매각 대상 거론" 수준 2026년 8월 4일 스포츠동아 — 구체적 협상 클럽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명시
  • 케인의 토트넘 복귀는 전망 수준 영국 팀토크가 "독일에 3년 더 있어도 EPL에서 2시즌은 뛸 수 있다"고 서술했을 뿐, 본인 발언 원문은 확인되지 않음

케인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2025년 10월 인터뷰에서 케인 본인은 "난 스퍼스를 정말 사랑해.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행복해"라고 했었어요.
시점이 다르니 뉘앙스도 다릅니다.
제목만 보고 "케인 복귀 확정"으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예요.

그래도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서

여기서부터가 그나마 숨통 트이는 대목이에요.
0명이 된 건 임대와 강등 때문이지, 한국 선수가 EPL 스쿼드에서 전원 사라진 게 아니거든요.

제일 앞에 있는 이름이 박승수예요.
2007년생, 수원 삼성 출신 19세 윙어인데 가디언이 8월 7일 2026-27시즌 팀별 유망주 특집에서 뉴캐슬 대표로 뽑았습니다.
PL2에서 90분당 평균 4.7회 드리블을 시도했다고 해요.

양민혁의 Newcastle 검은/흰색 저지 착용
양민혁의 Newcastle 검은/흰색 저지 착용

"앤서니 고든이 팀을 떠난 만큼 왼쪽 측면에는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특히 새로 영입한 바주마나 투레가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 가디언

여기에 감독 교체 변수도 붙어요.
에디 하우에서 38세 마티아스 야이슬레로 바뀌었는데, 젊은 감독이 유망주에게 기회를 더 줄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지 크로니클 라이브는 뉴캐슬이 "숨은 보석을 영입했다"며 박승수가 "생각보다 일찍 EPL 데뷔전을 치를 수도 있다"고 썼고요.
만약 데뷔하면 역대 16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됩니다.

양민혁의 Newcastle 저지 착용 모습
양민혁의 Newcastle 저지 착용 모습

김지수도 있어요.
이미 2025년 12월 28일 브라이턴전 교체 출전으로 EPL 데뷔를 했고, 당시 20세 4일로 한국 선수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습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임대를 마치고 돌아와 8월 9일 스타드 렌과의 비공개 친선전에서 풀타임을 뛰었어요.
다만 네이선 콜린스·에단 피녹·리코 헨리 같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고, 구단이 재임대로 키우려는 기류라 출전은 불투명합니다.

양민혁의 Newcastle 내부 이동 중 모습
양민혁의 Newcastle 내부 이동 중 모습

윤도영(브라이턴)은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 임대 중이라 이번 시즌 EPL은 어려워 보여요.
이강인은 PSG를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5년 계약을 했고,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 잔류, 오현규는 베식타시 원톱 주전으로 낙점됐습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데, EPL은 아니에요.
그게 이 글의 슬픈 지점입니다.

양민혁의 Newcastle 검은/흰색 줄무늬 저지
양민혁의 Newcastle 검은/흰색 줄무늬 저지

일본 얘기는 굳이 꺼내야 하나 싶었지만

안 꺼낼 수가 없더라고요.
일본 매체 '더월드'가 대놓고 "한국 선수들이 EPL에서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거든요.
그 옆에 자기네 상황을 붙여놨는데, 미토마(브라이턴)·엔도(리버풀)·카마다(팰리스)·다나카(리즈) 같은 기존 선수들에 사카모토·마에다·모리타·도미야스까지 더해 새 시즌 8~10명이 뛸 수 있다는 계산이에요.

0 대 8~10.
숫자 보고 잠깐 창을 껐습니다.

이걸 두고 국내에선 "낭만을 잃고 시스템에 갇혔다" 같은 표현으로 K리그 육성 구조를 비판하는 프레임이 반복되고 있어요.
다만 저는 여기에 조금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양민혁만 봐도, 문제는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무 살이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뛸 자리를 얻는 게 원래 이만큼 어렵다는 것에 가깝거든요.
손흥민이 예외적으로 대단했던 거지, 그게 기본값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Brighton 노란색 저지의 한국 선수 경기 모습
Brighton 노란색 저지의 한국 선수 경기 모습

그래서 8월 22일엔

아스널-코번트리로 시즌이 열립니다.
응원할 한국 선수 없이 보는 개막전은 21년 만이에요.
대신 뉴캐슬 벤치에 19살짜리 이름 하나가 앉아 있을지 없을지를 확인하는 재미로 봐야겠죠.
그 정도면 저는 충분히 새벽에 일어날 이유가 됩니다.

확정되면 이어서 정리합니다.

표기 단계가 바뀌면 이 글도 갱신됩니다.

이웃 글

맨유 콘테 감독설, 캐릭 경질 압박 커진 이유

맨유 콘테 감독설, 캐릭 경질 압박 커진 이유

맨유가 캐릭 감독 후임 1순위로 콘테를 놓고 중개인을 통해 초기 접촉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다만 이건 이탈리아 매체발이고, 구단은 며칠 전까지 "캐릭 신

해외축구